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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문서임마누엘교회 증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증인의 문서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9

임마누엘의 증인들(8)_조기범 장로편(12.05.18)

관리자 2021-06-29 616
8

임마누엘의 증인들(7)_김금애 권사편(12.05.10)

관리자 2021-06-29 444
7

임마누엘의 증인들(6)_고등부 손지훈편(12.05.03)

관리자 2021-06-29 376
6

임마누엘의 증인들(5)_사사키 케이이치 목사(12.04.27)

관리자 2021-06-29 323
5

임마누엘의 증인들(4)_윤선용 집사편(12.04.20)

관리자 2021-06-29 438
임마누엘의 증인들(7)_김금애 권사편(12.05.10)

    그리스도와 참 전도자를 만난 술람미 여인의 축복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바울은 고백했다.(롬3: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고 의인은 없다고(롬3:10) 고백하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축복을 전달하는 것이 최고의 사명임을 성경에서 말한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무엇인지 사실적으로 보여 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는 크리스천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하다. 죄 아래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의 축복을 받은 임마누엘의 증인을 지금 만나보자.

    <김금애 권사 간증문>

    안녕하세요. 저는 초창기부터 교회를 지켜본 김금애 권사입니다. 저희 교회의 시작은 1987년 8월 첫 주부터 시작하여 이동의 전도사님 댁에서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초창기 교인들은 28~30명으로 시작하였고 예배할 장소가 없어서 네 군데 정도를 옮겨 다니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10월, 담임 목사님과 우리는 최고의 만남, 전도자와의 만남이라는 시대적인 응답을 받았습니다. 담임 목사님과의 첫 만남은 다방입니다. 혼자서 만난 건 아니고요. 하을년 권사님과 함께 나갔는데 목사님의 첫인상은 반곱슬에 솔직히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테이프를 하나 주시면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설교 할 때 녹음한건데 들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라고 말씀하셨지요. 교회에 돌아와서 테이프를 들었는데 너무 좋은거예요. 그래서 성도님 모두 만장일치로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12평짜리 2층에서 담임 목사님께서 첫 설교를 하셨는데, ‘세계복음화 하는 교회’를 선포하셨고 바로 20여명의 성도를 데리고 전도기초훈련을 시작하셨어요. 명칭은 '전도기초 훈련 1기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과 함께 복음과 기도, 전도에 관해 복음 기초 메시지를 확립하는 전도기초 훈련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철야기도나 새벽기도를 드릴 곳이 없어 성도들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백성처럼 어두운 대학 산속에서 후레쉬를 들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가며, 바닷바람이 부는 산속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증금 5백만원의 35평 지하에 월세를 내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3주 동안 저녁마다 전도 집회를 하시고 일대를 돌면서 전도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핵심요원들을 모으시고 말씀을 하셨고 3년이 넘게 담임 목사님을 따라다니며 모든 예배를 인도받고 늘 복음을 듣게 되어 저의 모든 생각과 마음이 복음체질로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물을 주지 않은 화분에 화초가 살아나는 것처럼 개인이 말씀으로 살아나는 체험과 함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기뻤습니다. 교인수도 30명에서 수백명으로 늘어나 예배를 드리기도 힘들 정도로 꽉 찼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옆 버스에서도 TV를 연결해서 예배를 드렸고, 주변 상가건물의 빈 곳이나 교회 앞 빈 공터 등 장소에 상관없이 선만 연결되면 예배장소로 변했습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자 사단도 총출동했는지 교인들간 싸움도 있었고 신비주의적인 집사님으로 온 교회가 시험에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전도운동을 통해 부산에 13군데 선교관을 세우셨고, 큰 증거가 일어나자 주위 교회들이 시기하여 목사님께 누명을 씌우고 전도운동도 못 나가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교인들은 전도운동과 성전건축을 위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릴레이 기도를 하여 만 7년만에 백배의 축복을 주셔서 지금의 교회로 1994년 새성전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담임 목사님께서 저희 집에서 매주 화요일 마다 3년 동안 직접 말씀을 하셨고, 그 후에 제가 인도하여 지금까지 지속해왔습니다. 점심때는 보리밥을 해서 교인들과 먹으며 예배를 드렸고 많은 역사과 증거들도 일어났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모임을 인도하시면서 초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더 강조하셨습니다. 모임과 말씀 사역을 통해 치유사역도 많이 일어났고 정신, 마음, 피, 뼈까지 치유되는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사역도 목사님의 자필로 쓰신 구원의 확신 말씀을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많이 떨리고 성구도 생각이 안 났는데 찬양하면서 성령님께서 떨렸던 마음을 잡아주시고 불신자가 영접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영접하신 그분도 안올려고 하다가 다른 집사님의 끊임없는 부탁으로 미안해서 왔는데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니 이렇게 마음 기쁠 수가 없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모임은 현장에서 내 집이든 사무실이든 오픈하여 불신자든 신자든 스님이든 살인자든 모든 사람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하신 한 장소와 한 사람을 통하여 누구든지 와서 복음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역은 작은 교회로 구역이 안 되면 교회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구역과 교회를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 초창기 때, 전도역사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산 말씀으로 응답을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사람이 살아나고 흑암이 무너지며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임마누엘의 산 증인들이 계속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후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한을 생각하며 평생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합니다.

     

    <아들 홍임용 전도사(총신 연구원3학년)가 본 어머니 김금애 권사는...> 
    복음 받기 전이나 복음 받고난 후에나 항상 새벽기도를 다니시며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를 보시고 항상 “세상에서 하나님이 제일 좋다. 그 다음이 우리 아들 임용이가 좋다.”고 하셨기에 저 스스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실적인 믿음이 생겼습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성도님들과 목사님들이 싸움을 많이 하셨는데 어머님과 아버지는 항상 그 사이에서 말리시는 모습을 보아왔고 어머님은 교회가 말씀만 전달하는 교회가 되길 늘 기도 하셨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모임을 하시며 구역예배를 하셨는데 큰방과 거실 작은방까지 꽉 찰만큼 모여서 기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친척분 중에서도 사직동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면서 우울증이 치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치유사역을 통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전도하고 계십니다.(인터뷰협조=조은혜 시민기자)

    *출처 : 조은뉴스 http://www.egn.kr/news/articleView.html?idxno=45326 

임마누엘의 증인들(7)_김금애 권사편(12.05.10)

    그리스도와 참 전도자를 만난 술람미 여인의 축복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바울은 고백했다.(롬3: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고 의인은 없다고(롬3:10) 고백하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축복을 전달하는 것이 최고의 사명임을 성경에서 말한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무엇인지 사실적으로 보여 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는 크리스천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하다. 죄 아래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의 축복을 받은 임마누엘의 증인을 지금 만나보자.

    <김금애 권사 간증문>

    안녕하세요. 저는 초창기부터 교회를 지켜본 김금애 권사입니다. 저희 교회의 시작은 1987년 8월 첫 주부터 시작하여 이동의 전도사님 댁에서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초창기 교인들은 28~30명으로 시작하였고 예배할 장소가 없어서 네 군데 정도를 옮겨 다니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10월, 담임 목사님과 우리는 최고의 만남, 전도자와의 만남이라는 시대적인 응답을 받았습니다. 담임 목사님과의 첫 만남은 다방입니다. 혼자서 만난 건 아니고요. 하을년 권사님과 함께 나갔는데 목사님의 첫인상은 반곱슬에 솔직히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테이프를 하나 주시면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설교 할 때 녹음한건데 들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라고 말씀하셨지요. 교회에 돌아와서 테이프를 들었는데 너무 좋은거예요. 그래서 성도님 모두 만장일치로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12평짜리 2층에서 담임 목사님께서 첫 설교를 하셨는데, ‘세계복음화 하는 교회’를 선포하셨고 바로 20여명의 성도를 데리고 전도기초훈련을 시작하셨어요. 명칭은 '전도기초 훈련 1기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과 함께 복음과 기도, 전도에 관해 복음 기초 메시지를 확립하는 전도기초 훈련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철야기도나 새벽기도를 드릴 곳이 없어 성도들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백성처럼 어두운 대학 산속에서 후레쉬를 들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가며, 바닷바람이 부는 산속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증금 5백만원의 35평 지하에 월세를 내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3주 동안 저녁마다 전도 집회를 하시고 일대를 돌면서 전도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핵심요원들을 모으시고 말씀을 하셨고 3년이 넘게 담임 목사님을 따라다니며 모든 예배를 인도받고 늘 복음을 듣게 되어 저의 모든 생각과 마음이 복음체질로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물을 주지 않은 화분에 화초가 살아나는 것처럼 개인이 말씀으로 살아나는 체험과 함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기뻤습니다. 교인수도 30명에서 수백명으로 늘어나 예배를 드리기도 힘들 정도로 꽉 찼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옆 버스에서도 TV를 연결해서 예배를 드렸고, 주변 상가건물의 빈 곳이나 교회 앞 빈 공터 등 장소에 상관없이 선만 연결되면 예배장소로 변했습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자 사단도 총출동했는지 교인들간 싸움도 있었고 신비주의적인 집사님으로 온 교회가 시험에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전도운동을 통해 부산에 13군데 선교관을 세우셨고, 큰 증거가 일어나자 주위 교회들이 시기하여 목사님께 누명을 씌우고 전도운동도 못 나가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교인들은 전도운동과 성전건축을 위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릴레이 기도를 하여 만 7년만에 백배의 축복을 주셔서 지금의 교회로 1994년 새성전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담임 목사님께서 저희 집에서 매주 화요일 마다 3년 동안 직접 말씀을 하셨고, 그 후에 제가 인도하여 지금까지 지속해왔습니다. 점심때는 보리밥을 해서 교인들과 먹으며 예배를 드렸고 많은 역사과 증거들도 일어났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모임을 인도하시면서 초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더 강조하셨습니다. 모임과 말씀 사역을 통해 치유사역도 많이 일어났고 정신, 마음, 피, 뼈까지 치유되는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사역도 목사님의 자필로 쓰신 구원의 확신 말씀을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많이 떨리고 성구도 생각이 안 났는데 찬양하면서 성령님께서 떨렸던 마음을 잡아주시고 불신자가 영접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영접하신 그분도 안올려고 하다가 다른 집사님의 끊임없는 부탁으로 미안해서 왔는데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니 이렇게 마음 기쁠 수가 없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모임은 현장에서 내 집이든 사무실이든 오픈하여 불신자든 신자든 스님이든 살인자든 모든 사람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하신 한 장소와 한 사람을 통하여 누구든지 와서 복음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역은 작은 교회로 구역이 안 되면 교회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구역과 교회를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 초창기 때, 전도역사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산 말씀으로 응답을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사람이 살아나고 흑암이 무너지며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임마누엘의 산 증인들이 계속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후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한을 생각하며 평생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합니다.

     

    <아들 홍임용 전도사(총신 연구원3학년)가 본 어머니 김금애 권사는...> 
    복음 받기 전이나 복음 받고난 후에나 항상 새벽기도를 다니시며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를 보시고 항상 “세상에서 하나님이 제일 좋다. 그 다음이 우리 아들 임용이가 좋다.”고 하셨기에 저 스스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실적인 믿음이 생겼습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성도님들과 목사님들이 싸움을 많이 하셨는데 어머님과 아버지는 항상 그 사이에서 말리시는 모습을 보아왔고 어머님은 교회가 말씀만 전달하는 교회가 되길 늘 기도 하셨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모임을 하시며 구역예배를 하셨는데 큰방과 거실 작은방까지 꽉 찰만큼 모여서 기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친척분 중에서도 사직동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면서 우울증이 치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치유사역을 통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전도하고 계십니다.(인터뷰협조=조은혜 시민기자)

    *출처 : 조은뉴스 http://www.egn.kr/news/articleView.html?idxno=45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