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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문서임마누엘교회 증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증인의 문서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19

임마누엘의 증인들(19)_유년부 독서캠프 입상작(12.11.22)

관리자 2021-07-01 489
18

임마누엘의 증인들(18)_서수복 권사편(12.11.05)

관리자 2021-07-01 405
17

임마누엘의 증인들(17)_최용숙 집사편(12.09.27)

관리자 2021-07-01 296
16

임마누엘의 증인들(16)_곽세언 초등부 전월금 집사편(12.09.11)

관리자 2021-07-01 364
15

임마누엘의 증인들(15)_박경화 성도편(12.08.22)

관리자 2021-07-01 334
임마누엘의 증인들(15)_박경화 성도편(12.08.22)

    주는 그리스도시요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세절기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의 핵심은 그리스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복음이 희미해지면 어김없이 재앙이 찾아왔다. 선민사상에 빠져있던 이스라엘은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고난을 당했다.

    마16:13~20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을 한다. 더러는 이르되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대답을 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복음을 사회운동, 신비주의, 박애주의, 종교로 봄으로 신앙생활에 실패하고 말았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의 복음이 선포된 700년 만에 인간으로는 최초로 베드로가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신자에게 주신 축복을 말씀하신다. 의정부역 칼부림, 수원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 현장은 다 죽어가고 있고 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를 바로 붙잡으면 하나님을 떠난 근본문제에서 바로 해결 받을 수 있다. 평상시에 복음을 누리고 사건 속에서 복음을 누리는 임마누엘 증인의 축복으로 다함께 들어가 보자


    <우상숭배의 고통에서 영원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금정권역 박경화 성도>

    저는 태어나서 10살 때까지 영도 동삼동에서 살았습니다. 저희 집은 불교지만 늘 무당집을 오가며 굿판을 벌리는 집이고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믿고 섬기는 집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겁니다.

    부산에서 살다 어머니의 고향인 청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가도 무당집을 오가며 굿을 하고 무슨 날만 되면 행사처럼 무당집을 드나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열심히 모든 돈으로 꽤 값나가는 아파트를 사셨는데 무속인이 그 집으로 이사를 가면 사람이 죽어나간다며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집계약을 하고 이사 가는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어머니는 밤마다 중간만한 크기의 쓰레기통 하나에 입으로 코로 피를 덩어리째 쏟아내고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새로 마련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어머니는 그 곳에서 점점 앓아눕기 시작하시더니 끝내는 백혈병과 비장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다는 의사의 말끝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본다는 심정으로 아버지는 안수전문 기도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셨습니다. 이때 (15살)때부터 살림을 도맡아 했고 교회를 다니며 금식을 하고 기도도 해봤습니다.

    그러던 중 기도원에 가셨던 부모님께서 두 달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은 굉장히 부어 있었고 부기가 빠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붓기가 빠지면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것이라며 아버지께 기도원 원장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끝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후로 49제가 다가올 무렵 꿈속에서 강을 건너오라는 어머니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불러서 가면 저도 같이 죽는다는 무속인의 말에 겁이 났습니다. 또 어느 날은 꿈에서 하늘에 가보니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며 부처님이 계시니 부처님을 믿으라는 말에 너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는 무서워 혼자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눈에 귀신이 보여서 집에 있질 못하고 추워도 놀이터에서 아버지가 귀가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곳에서 동료 언니에게 ‘대순진리’라는 종교를 소개받았습니다. 늘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며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어버렸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정성금’을 하며 40~50만원씩 옷을 사서 조상께 태워서 바쳤습니다. 그리고 큰 행사가가 있을 때는 일을 마치고 피곤하더라도 항상 참석해서 절을 하며 우상숭배를 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이렇게 다달이 정성금을 하고 제사도 열심히 지내는데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면서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제일 윗분이 찾아와서 정성기도와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정말 더 힘들어지고 악재가 겹친다며 저를 가만두질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저에게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30분이 지나도 그칠 줄을 몰랐으며 방바닥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저는 그 순간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동료들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 가서 검사를 해봤지만 병명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제단에 참석하지 않고 정성금을 하지 않으면 늘 저의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무서웠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지금 아이들의 아빠를 23살에 만났습니다. 저희 시댁은 충청남도 청양이며 종가집 신랑은 종손으로 저는 제일 큰 종가집의 며느리입니다.

    결혼식을 하려고 하면 늘 안 좋은 일이 생겨 하지 못하였습니다.(아홉수, 시아버지의 죽음, 삼재 등등)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많은 제사 때마다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차리고 조상께 비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일 없게 아이들과 가정을 잘 보살펴 주시라고 말이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31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그 행복은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매일같이 술로만 살던 제게 시간표가 온 것일까요?

    부산에 살고 있는 작은 오빠와 올케 언니가 바람을 쐬러 오라는 겁니다. 마음은 부산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두 자녀와 부산으로 내려가서 있는 일주일 동안, 올케의 소개로 안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낯선 사람이 저의 사정도 모르면서 만나러 오신다는 말에 싫었지만 와서 설명해주시는 복음을 가만히 들어보니 돈 주고도 못 얻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집사님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일주일동안 매일 오신 것 같아요.

    여러 번 만나면서 종가집의 우상숭배와 어릴 때부터 해온 미신종교에서 다 빠져나올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엔 믿기지 않지만 정말 벗어나고 싶었어요. 안집사님께서 그냥 편안하게 영접만 하면 된다고 하셔서 불신앙을 가졌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후, 청양으로 올라가 마지막 날 결단을 하였습니다.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않겠습니다! 복음 안에서 두 귀한 자녀를 키우고 저의 삶과 두 자녀의 삶을 인도해 달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2011년 9월 30일 하나님께서 주신 금정구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선택하고 결단을 하니깐 하나님의 방법으로 삶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고요한 바다처럼 너무 좋아요. 이 마음을 예수님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 큰데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도로 표현을 못해서 힘들고, 잘 훈련받으신 여러 집사님들과 비교되어 제가 위축될 때가 많아요. 정말 이제 본업으로 사람 살리는 전도자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두 귀한 자녀들을 제게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복음 안에서 두 후대를 키우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와 아이들을 하나님의 소원이신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임마누엘의 증인들(15)_박경화 성도편(12.08.22)

    주는 그리스도시요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세절기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의 핵심은 그리스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복음이 희미해지면 어김없이 재앙이 찾아왔다. 선민사상에 빠져있던 이스라엘은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고난을 당했다.

    마16:13~20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을 한다. 더러는 이르되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대답을 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복음을 사회운동, 신비주의, 박애주의, 종교로 봄으로 신앙생활에 실패하고 말았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의 복음이 선포된 700년 만에 인간으로는 최초로 베드로가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신자에게 주신 축복을 말씀하신다. 의정부역 칼부림, 수원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 현장은 다 죽어가고 있고 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를 바로 붙잡으면 하나님을 떠난 근본문제에서 바로 해결 받을 수 있다. 평상시에 복음을 누리고 사건 속에서 복음을 누리는 임마누엘 증인의 축복으로 다함께 들어가 보자


    <우상숭배의 고통에서 영원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금정권역 박경화 성도>

    저는 태어나서 10살 때까지 영도 동삼동에서 살았습니다. 저희 집은 불교지만 늘 무당집을 오가며 굿판을 벌리는 집이고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믿고 섬기는 집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겁니다.

    부산에서 살다 어머니의 고향인 청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가도 무당집을 오가며 굿을 하고 무슨 날만 되면 행사처럼 무당집을 드나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열심히 모든 돈으로 꽤 값나가는 아파트를 사셨는데 무속인이 그 집으로 이사를 가면 사람이 죽어나간다며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집계약을 하고 이사 가는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어머니는 밤마다 중간만한 크기의 쓰레기통 하나에 입으로 코로 피를 덩어리째 쏟아내고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새로 마련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어머니는 그 곳에서 점점 앓아눕기 시작하시더니 끝내는 백혈병과 비장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다는 의사의 말끝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본다는 심정으로 아버지는 안수전문 기도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셨습니다. 이때 (15살)때부터 살림을 도맡아 했고 교회를 다니며 금식을 하고 기도도 해봤습니다.

    그러던 중 기도원에 가셨던 부모님께서 두 달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은 굉장히 부어 있었고 부기가 빠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붓기가 빠지면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것이라며 아버지께 기도원 원장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끝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후로 49제가 다가올 무렵 꿈속에서 강을 건너오라는 어머니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불러서 가면 저도 같이 죽는다는 무속인의 말에 겁이 났습니다. 또 어느 날은 꿈에서 하늘에 가보니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며 부처님이 계시니 부처님을 믿으라는 말에 너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는 무서워 혼자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눈에 귀신이 보여서 집에 있질 못하고 추워도 놀이터에서 아버지가 귀가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곳에서 동료 언니에게 ‘대순진리’라는 종교를 소개받았습니다. 늘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며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어버렸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정성금’을 하며 40~50만원씩 옷을 사서 조상께 태워서 바쳤습니다. 그리고 큰 행사가가 있을 때는 일을 마치고 피곤하더라도 항상 참석해서 절을 하며 우상숭배를 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이렇게 다달이 정성금을 하고 제사도 열심히 지내는데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면서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제일 윗분이 찾아와서 정성기도와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정말 더 힘들어지고 악재가 겹친다며 저를 가만두질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저에게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30분이 지나도 그칠 줄을 몰랐으며 방바닥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저는 그 순간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동료들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 가서 검사를 해봤지만 병명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제단에 참석하지 않고 정성금을 하지 않으면 늘 저의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무서웠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지금 아이들의 아빠를 23살에 만났습니다. 저희 시댁은 충청남도 청양이며 종가집 신랑은 종손으로 저는 제일 큰 종가집의 며느리입니다.

    결혼식을 하려고 하면 늘 안 좋은 일이 생겨 하지 못하였습니다.(아홉수, 시아버지의 죽음, 삼재 등등)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많은 제사 때마다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차리고 조상께 비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일 없게 아이들과 가정을 잘 보살펴 주시라고 말이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31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그 행복은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매일같이 술로만 살던 제게 시간표가 온 것일까요?

    부산에 살고 있는 작은 오빠와 올케 언니가 바람을 쐬러 오라는 겁니다. 마음은 부산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두 자녀와 부산으로 내려가서 있는 일주일 동안, 올케의 소개로 안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낯선 사람이 저의 사정도 모르면서 만나러 오신다는 말에 싫었지만 와서 설명해주시는 복음을 가만히 들어보니 돈 주고도 못 얻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집사님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일주일동안 매일 오신 것 같아요.

    여러 번 만나면서 종가집의 우상숭배와 어릴 때부터 해온 미신종교에서 다 빠져나올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엔 믿기지 않지만 정말 벗어나고 싶었어요. 안집사님께서 그냥 편안하게 영접만 하면 된다고 하셔서 불신앙을 가졌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후, 청양으로 올라가 마지막 날 결단을 하였습니다.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않겠습니다! 복음 안에서 두 귀한 자녀를 키우고 저의 삶과 두 자녀의 삶을 인도해 달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2011년 9월 30일 하나님께서 주신 금정구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선택하고 결단을 하니깐 하나님의 방법으로 삶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고요한 바다처럼 너무 좋아요. 이 마음을 예수님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 큰데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도로 표현을 못해서 힘들고, 잘 훈련받으신 여러 집사님들과 비교되어 제가 위축될 때가 많아요. 정말 이제 본업으로 사람 살리는 전도자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두 귀한 자녀들을 제게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복음 안에서 두 후대를 키우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와 아이들을 하나님의 소원이신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