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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문서임마누엘교회 증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증인의 문서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19

임마누엘의 증인들(19)_유년부 독서캠프 입상작(12.11.22)

관리자 2021-07-01 647
18

임마누엘의 증인들(18)_서수복 권사편(12.11.05)

관리자 2021-07-01 540
17

임마누엘의 증인들(17)_최용숙 집사편(12.09.27)

관리자 2021-07-01 410
16

임마누엘의 증인들(16)_곽세언 초등부 전월금 집사편(12.09.11)

관리자 2021-07-01 483
15

임마누엘의 증인들(15)_박경화 성도편(12.08.22)

관리자 2021-07-01 452
임마누엘의 증인들(18)_서수복 권사편(12.11.05)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시30:11).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시46:6~7)

    <디사이플콰이어 지휘자 서수복 권사>할렐루야! 웬 은혜인지 웬 사랑인지...! 불신자 상태의 영적 저주를 팔자니, 운명이니 하면서 우상과 미신을 섬기는 가문에서 구원해 주시고, 전도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이상과 현실 속의 고민과 갈등으로 늘 우울하고 슬펐지만, 나에게 복음 되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전도자의 삶을 사는 저의 인생은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 늘 전도에 갈급했던 저에게, 전도훈련을 통해 20년 동안 펼쳐졌던 예배는 완벽한 응답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축복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제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왕되신 그 분을 찬양하며 복음문화를 주도하는 남은 자로써 자녀와 후대, 숨겨진 자들에게 올바른 전달자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하며,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배는 제 인생의 임마누엘이었습니다.비록 종교적이긴 했지만, 저에게 있어 구원은 너무나도 특별했기에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전도의 갈급함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 것 같습니다. 1989년 6월 삼익 크로마하프 교육 연구회 부산 지부장 위촉을 받고 각 학교 어머니회 및 교회 중직자들을 레슨차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의 영적 상태와 고통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살려야 하는 ‘부산 복음화’의 절박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91년 12월 가나안 수양관에서 처음으로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는데,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 2년 6개월 동안 기도해오던 부산 복음화의 모든 답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생 결단을 하고, 그 당시 주일 밤 예배를 비롯한 모든 집회들을 참석하면서 받은 말씀들을 현장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200여명의 수강생들을 그룹 레슨 하는 중 갈급한 사람들은 따로 남겨 메시지를 주고, 더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제가 운영하던 남천동 학원으로 오게 해 사명자 예배를 했는데, 군데군데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현장들이 살아났습니다.


    메시지를 붙잡고 공단, 병원, 학교 등 현장을 위해서 기도하면, 아무 연고도 없었던 그 현장에 숨겨진 자를 반드시 만나게 하셔서 전도 문을 열어주셨고, 거의 매주 준비된 자를 보내셔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일심의 찬양 속에 불신앙과 병마가 떠나가는 치유의 역사도 보았습니다. 매주 열서너 군데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지면에 다 적을 수 없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과 축복의 만남이 많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밥 생각이 안 날 정도로 힘이 났습니다.


    1992년 8월 어느 날, 목사님께서 부르시더니 합숙훈련을 시작하겠다 하시면서 합숙훈련생들에게 현장 간증을 하게 하셨고, 남천동 사명자 예배를 참관토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인지 저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정말 부담스럽고 부족했지만 전국, 세계에 현장 예배를 통한 복음운동의 확산에 사용하셨음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또 목사님께서 팀합숙 훈련을 만들겠다고 하시면서 팀장을 하게 하셨습니다. 김 목사님을 비롯한 전국 목사님들이 1기로 모이셨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쫒아 현장을 정하고 사역자를 준비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24시 집중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기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응답되고, 발걸음이 옮겨지는 그 곳에는 반드시 숨겨진 자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 동안이 사역을 하면서 저에게 있던 모든 불신앙이 다 무너졌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복음 가진 나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믿음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참 은혜 속에 있을 때 갑자기 가정과 교회, 사역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왔습니다.


    95년 2월 하나님이 갑자기 남편을 불러가셨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곤란한 가정문제, 교회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등이 사방에서 짓눌렀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하나님이시며, 해결자가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졌고, 그 안에 있는 내 인생의 시간표가 보였습니다. 그것이 저를 견딜 수 있게 만든 힘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복음화를 위해 함께 가자고 하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떠나갔고,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저를 믿고 남아있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션홈이 선포되는 시간표였는데 자연스레 모여서 실제적인 기도의 응답을 확인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믿음을 점검하는 미션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자들이 지금도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언약을 가진 자에게는 문제가 참 유익한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든 그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일방적인 구원과 능력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고, 핍박과 어려움들이 저를 많이 갱신시키고 또 다른 부분을 준비시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완벽한 시간표 속에서 모든 환경이 치유되어지고 그릇이 조금 준비되자 복음문화 확산을 위해 숨겨진 찬양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2008년 12월 디사이플콰이어 창단 연주회를 가진 이래 매주 토요일마다 찬양의 은혜를 나누는 전문교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청학동은 영도중에서도 중직자가 거의 없는 황폐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특히 신도 브래뉴 아파트에는 우리 교인이 저를 포함해서 두 가정입니다. 믿음이 신실한 조장 김보연 집사와 단 둘이 시작한 지교회지만 얼마 전 강명자 선생님이 등록하심으로 세 가정이 되었고 돌배기 후대를 비롯한 10여명의 믿음의 사람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지역과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알아가고 올바른 기도제목을 붙잡고 기도를 실천하는 후대들을 보면서 너와 네 후손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신학원과 선교사훈련원을 담당하면서 많은 제자들과 이 보화밭의 비밀을 함께 누려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2. 찬양이 제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복음과 전도자와의 만남, 그리고 음악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3화음을 건반으로 옮겨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틈만 있으면 교회 가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깜깜한 가정환경에 답답할 때가 너무 많았지만 그때마다 교회 오르간 앞에 앉아 찬양을 했습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노라면 영혼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그 분은 나의 힘이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찬송가 한권을 거의 다 외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꿈이 생겼습니다. 찬양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로. 찬양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제 인생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 구석에서 다시 찬송이 피어오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1988년 겨울 시아버님 장례식을 다 마치고 혼자 조용히 찬양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시40:1~3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밤새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의 303장 찬송과 함께 아멘으로 예배하였습니다. 이후 89년 6월 삼익 크로마하프 교육 연구회 부산 지부장으로 위촉되어 전도운동 속에서 많은 제자를 찾게 되는 중요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은혜를 누리고 있던 95년 2월, 하나님이 남편을 불러 가시면서 들이닥친 광풍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말씀 출14:13절 말씀을 붙잡고 숨죽여 찬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니~’ 소리 내어 기도할 기력도 없었으나 할렐루야! 내 영의 깊은 간구와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96년 6월, 마음껏 복음 전하고 제자 키울 수 있는 전도훈련원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저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99년 제 몸에 암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복음 훈련이 좀 됐는지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면서 편안했습니다. 찬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하나님은 미래를 준비시키시고 보험금이라는 숨은 경제를 돌리셨고 12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하고 똑똑하던 사랑하는 아들이 나쁜 친구와 어울렸고, 급기야는 집을 나가게 되고 지금까지 당한 모든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지만 피할 수 있는 길은 찬양이었습니다. 찬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찬송을 부르고 있노라니 하나님은 어김없이 또 말씀을 주셨습니다. 합3:17~19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4년의 세상 수업을 끝내고 이젠 세상 살리는 전도자의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환난을 만나도, 위기를 당해도, 어찌 이리 당당하고 편안한지. 어찌 이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제 찬양은 제 삶이 되었습니다.


    복음 가진 자의 찬양은 행16장처럼 전도의 문도 열리게 했습니다. 작년 초, 어느 날 신도 브래뉴 아파트를 놓고 기도하면서 ‘나는 예수로 살리’로 정시 찬양을 했는데 이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청학 초등학교 교사이신 강명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봄 역시 다니엘서를 묵상하면서 ‘나 비록 연약하지만 주님은 완전하시니 우리 때때로 넘어져도 주님 일으키시네~’ 찬양하는데 언젠가 부탁 받았던 봉학초등학교 김현숙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극심한 영적 고갈상태로 어젯밤 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지금은 지교회에 계속 참석하시며 반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선생님으로 바뀌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만큼이나 찬양 속에 놀라운 비밀을 감추신 것 같습니다. 2002년 산업선교 주최 제2회 찬양축제는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시간표였습니다. 그 당시 섬기고 있던 그루터기 찬양대 권사님들 중심으로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을 진심으로 준비했는데 그 속에 하나님은 제가 알지 못했던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중요한 만남과 문을 통해 음악 세계를 좀 더 깊고 넓게 준비시키시더니, 이제 복음적 찬양, 현장적 찬양, 언약적 찬양, 제자의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신지요?


    소중한 제자들이 디사이플콰이어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찬양, 빼앗겨 버린 복음문화를 찾고 아무런 동기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자들과 후대를 세워나가도록 기도하는 중 초등부 찬양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배와 찬양을 가르치고, 그들의 달란트를 개발해서 흑암문화를 꺾고 복음문화를 주도할 후대를 만들기 위해 뛰어가는데, 열과 성을 다해 따라오는 우리의 후대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디사이플콰이어에서는 각 교회마다 중직자와 후대가 소통되는 원니스 문화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계 렘넌트 대회에 후대와 중직자의 원니스된 합창 경연대회가 미션으로 나왔습니다. 저희에게는 정말이지 큰 응답입니다. 부산과 전 세계에 흩어진 후대와 중직자가 복음을 위하여 원니스되어 찬양할 때 전 세계 역사하는 사단이 기절하고 결박되길. 찬양이 각 교회의 아름다운 문화로 자리 잡으며, 나아가 세상을 살리는 전도문화로 승화되길 기도합니다.


    기도에 응답 하시는 하나님! 찬양 중에 임재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모두 이 일에 증인되어, 현장 살리는 힘 있는 전도자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의 마땅히 할 바로다’(시33:1)


    *출처 : 조은뉴스 http://www.egn.kr/news/articleView.html?idxno=50128

     

임마누엘의 증인들(18)_서수복 권사편(12.11.05)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시30:11).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시46:6~7)

    <디사이플콰이어 지휘자 서수복 권사>할렐루야! 웬 은혜인지 웬 사랑인지...! 불신자 상태의 영적 저주를 팔자니, 운명이니 하면서 우상과 미신을 섬기는 가문에서 구원해 주시고, 전도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이상과 현실 속의 고민과 갈등으로 늘 우울하고 슬펐지만, 나에게 복음 되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전도자의 삶을 사는 저의 인생은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 늘 전도에 갈급했던 저에게, 전도훈련을 통해 20년 동안 펼쳐졌던 예배는 완벽한 응답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축복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제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왕되신 그 분을 찬양하며 복음문화를 주도하는 남은 자로써 자녀와 후대, 숨겨진 자들에게 올바른 전달자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하며,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배는 제 인생의 임마누엘이었습니다.비록 종교적이긴 했지만, 저에게 있어 구원은 너무나도 특별했기에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전도의 갈급함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 것 같습니다. 1989년 6월 삼익 크로마하프 교육 연구회 부산 지부장 위촉을 받고 각 학교 어머니회 및 교회 중직자들을 레슨차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의 영적 상태와 고통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살려야 하는 ‘부산 복음화’의 절박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91년 12월 가나안 수양관에서 처음으로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는데,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 2년 6개월 동안 기도해오던 부산 복음화의 모든 답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생 결단을 하고, 그 당시 주일 밤 예배를 비롯한 모든 집회들을 참석하면서 받은 말씀들을 현장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200여명의 수강생들을 그룹 레슨 하는 중 갈급한 사람들은 따로 남겨 메시지를 주고, 더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제가 운영하던 남천동 학원으로 오게 해 사명자 예배를 했는데, 군데군데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현장들이 살아났습니다.


    메시지를 붙잡고 공단, 병원, 학교 등 현장을 위해서 기도하면, 아무 연고도 없었던 그 현장에 숨겨진 자를 반드시 만나게 하셔서 전도 문을 열어주셨고, 거의 매주 준비된 자를 보내셔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일심의 찬양 속에 불신앙과 병마가 떠나가는 치유의 역사도 보았습니다. 매주 열서너 군데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지면에 다 적을 수 없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과 축복의 만남이 많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밥 생각이 안 날 정도로 힘이 났습니다.


    1992년 8월 어느 날, 목사님께서 부르시더니 합숙훈련을 시작하겠다 하시면서 합숙훈련생들에게 현장 간증을 하게 하셨고, 남천동 사명자 예배를 참관토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인지 저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정말 부담스럽고 부족했지만 전국, 세계에 현장 예배를 통한 복음운동의 확산에 사용하셨음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또 목사님께서 팀합숙 훈련을 만들겠다고 하시면서 팀장을 하게 하셨습니다. 김 목사님을 비롯한 전국 목사님들이 1기로 모이셨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쫒아 현장을 정하고 사역자를 준비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24시 집중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기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응답되고, 발걸음이 옮겨지는 그 곳에는 반드시 숨겨진 자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 동안이 사역을 하면서 저에게 있던 모든 불신앙이 다 무너졌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복음 가진 나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믿음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참 은혜 속에 있을 때 갑자기 가정과 교회, 사역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왔습니다.


    95년 2월 하나님이 갑자기 남편을 불러가셨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곤란한 가정문제, 교회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등이 사방에서 짓눌렀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하나님이시며, 해결자가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졌고, 그 안에 있는 내 인생의 시간표가 보였습니다. 그것이 저를 견딜 수 있게 만든 힘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복음화를 위해 함께 가자고 하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떠나갔고,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저를 믿고 남아있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션홈이 선포되는 시간표였는데 자연스레 모여서 실제적인 기도의 응답을 확인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믿음을 점검하는 미션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자들이 지금도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언약을 가진 자에게는 문제가 참 유익한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든 그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일방적인 구원과 능력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고, 핍박과 어려움들이 저를 많이 갱신시키고 또 다른 부분을 준비시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완벽한 시간표 속에서 모든 환경이 치유되어지고 그릇이 조금 준비되자 복음문화 확산을 위해 숨겨진 찬양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2008년 12월 디사이플콰이어 창단 연주회를 가진 이래 매주 토요일마다 찬양의 은혜를 나누는 전문교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청학동은 영도중에서도 중직자가 거의 없는 황폐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특히 신도 브래뉴 아파트에는 우리 교인이 저를 포함해서 두 가정입니다. 믿음이 신실한 조장 김보연 집사와 단 둘이 시작한 지교회지만 얼마 전 강명자 선생님이 등록하심으로 세 가정이 되었고 돌배기 후대를 비롯한 10여명의 믿음의 사람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지역과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알아가고 올바른 기도제목을 붙잡고 기도를 실천하는 후대들을 보면서 너와 네 후손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신학원과 선교사훈련원을 담당하면서 많은 제자들과 이 보화밭의 비밀을 함께 누려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2. 찬양이 제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복음과 전도자와의 만남, 그리고 음악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3화음을 건반으로 옮겨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틈만 있으면 교회 가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깜깜한 가정환경에 답답할 때가 너무 많았지만 그때마다 교회 오르간 앞에 앉아 찬양을 했습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노라면 영혼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그 분은 나의 힘이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찬송가 한권을 거의 다 외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꿈이 생겼습니다. 찬양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로. 찬양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제 인생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 구석에서 다시 찬송이 피어오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1988년 겨울 시아버님 장례식을 다 마치고 혼자 조용히 찬양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시40:1~3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밤새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의 303장 찬송과 함께 아멘으로 예배하였습니다. 이후 89년 6월 삼익 크로마하프 교육 연구회 부산 지부장으로 위촉되어 전도운동 속에서 많은 제자를 찾게 되는 중요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은혜를 누리고 있던 95년 2월, 하나님이 남편을 불러 가시면서 들이닥친 광풍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말씀 출14:13절 말씀을 붙잡고 숨죽여 찬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니~’ 소리 내어 기도할 기력도 없었으나 할렐루야! 내 영의 깊은 간구와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96년 6월, 마음껏 복음 전하고 제자 키울 수 있는 전도훈련원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저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99년 제 몸에 암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복음 훈련이 좀 됐는지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면서 편안했습니다. 찬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하나님은 미래를 준비시키시고 보험금이라는 숨은 경제를 돌리셨고 12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하고 똑똑하던 사랑하는 아들이 나쁜 친구와 어울렸고, 급기야는 집을 나가게 되고 지금까지 당한 모든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지만 피할 수 있는 길은 찬양이었습니다. 찬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찬송을 부르고 있노라니 하나님은 어김없이 또 말씀을 주셨습니다. 합3:17~19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4년의 세상 수업을 끝내고 이젠 세상 살리는 전도자의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환난을 만나도, 위기를 당해도, 어찌 이리 당당하고 편안한지. 어찌 이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제 찬양은 제 삶이 되었습니다.


    복음 가진 자의 찬양은 행16장처럼 전도의 문도 열리게 했습니다. 작년 초, 어느 날 신도 브래뉴 아파트를 놓고 기도하면서 ‘나는 예수로 살리’로 정시 찬양을 했는데 이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청학 초등학교 교사이신 강명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봄 역시 다니엘서를 묵상하면서 ‘나 비록 연약하지만 주님은 완전하시니 우리 때때로 넘어져도 주님 일으키시네~’ 찬양하는데 언젠가 부탁 받았던 봉학초등학교 김현숙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극심한 영적 고갈상태로 어젯밤 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지금은 지교회에 계속 참석하시며 반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선생님으로 바뀌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만큼이나 찬양 속에 놀라운 비밀을 감추신 것 같습니다. 2002년 산업선교 주최 제2회 찬양축제는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시간표였습니다. 그 당시 섬기고 있던 그루터기 찬양대 권사님들 중심으로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을 진심으로 준비했는데 그 속에 하나님은 제가 알지 못했던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중요한 만남과 문을 통해 음악 세계를 좀 더 깊고 넓게 준비시키시더니, 이제 복음적 찬양, 현장적 찬양, 언약적 찬양, 제자의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신지요?


    소중한 제자들이 디사이플콰이어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찬양, 빼앗겨 버린 복음문화를 찾고 아무런 동기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자들과 후대를 세워나가도록 기도하는 중 초등부 찬양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배와 찬양을 가르치고, 그들의 달란트를 개발해서 흑암문화를 꺾고 복음문화를 주도할 후대를 만들기 위해 뛰어가는데, 열과 성을 다해 따라오는 우리의 후대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디사이플콰이어에서는 각 교회마다 중직자와 후대가 소통되는 원니스 문화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계 렘넌트 대회에 후대와 중직자의 원니스된 합창 경연대회가 미션으로 나왔습니다. 저희에게는 정말이지 큰 응답입니다. 부산과 전 세계에 흩어진 후대와 중직자가 복음을 위하여 원니스되어 찬양할 때 전 세계 역사하는 사단이 기절하고 결박되길. 찬양이 각 교회의 아름다운 문화로 자리 잡으며, 나아가 세상을 살리는 전도문화로 승화되길 기도합니다.


    기도에 응답 하시는 하나님! 찬양 중에 임재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모두 이 일에 증인되어, 현장 살리는 힘 있는 전도자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의 마땅히 할 바로다’(시33:1)


    *출처 : 조은뉴스 http://www.egn.kr/news/articleView.html?idxno=50128